나는 아직 학교에 몸을 담고 있어서 그런지 우리과에 대한 고민이 많다.
내가 나온 학과는 금속조형디자인과이다.
금속조형디자인과...
아무리 생각해도 과 이름이 참 난해하다.
학교다닐때는 입학때부터 졸업할때까지 항상 동기와 선배와 후배들과 함께 창조!!금디!! 를 외쳤기 때문에 그게 이상한줄 몰랐다.
근데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와서 사람들이 어느과를 나왔냐고 물어봤을때 당당하게 우리과 이름을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대부분 못알아듣는다. 그리고 금.속.조.형.디.자.인.과 라고 또박또박 말하면 그게 무슨과지? 라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우리과는 공예과가 아니다. 97년도 쯤에 공예라는 이름을 버리고 조형디자인으로 바꿨다.
나는 금속조형디자인과를 입학했고 금속조형디자인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금속공예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내가 디자이너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학교에서 배운것을 가지고 지금까지 하고 있으며 디자인과를 나왔으니 당연히 디자이너라고 생각했다.
근데 공예라는 관점에서 보면 나는 영락없는 공예가다.
카메라 디자이너라고 볼수도 있지만 공예가에 가까운것이 사실이다.
사실 나는 내가 공예가이건 디자이너이건 별 상관없다. 그게 바뀐다고 해서 내가 만드는것이 바뀌는건 아니니까.
나는 새로운 카메라를 디자인하고 창조하며 그안에서 희열을 느끼고 그것을 업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만들고 싶은것을 만들어 낼 뿐이다. 만들고 싶고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우리과는 나에게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수 있게하는 능력을 심어준 곳이다.
근데 디자인과다. 난 공예가인거 같은데...
그래서 고민이 되는것이다. 사람들도 궁금해하고 자꾸 물어보고...나도 점점 대답에 자신이 없어지고...우리과의 정체성이 뭔지 궁금해지고.
더 큰 문제는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것이 아니라는것!!
그래서 생각해봤다.
우리과 이름과 우리과의 정체성.
우선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 학교다닐때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좀 아닌거 같다.
자동차 디자인, 휴대폰 디자인, 의자 디자인, 축구공 디자인, 조명 디자인...등등 디자인이 들어가는것 앞에는 항상 인위적인 인공물들이 들어간다.
자연 디자인, 바람 디자인, 물 디자인...이런 말은 안쓴다. 디자인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데 내가 생각하기에 금속은 후자다. 금속은 광물의 일종으로 인공물이 아닌 자연물이기 때문이다.
금속 디자인...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것 같다.
근데 우리과 이름은 금속조형디자인이다.
금속조형을 디자인하다. 금속으로 조형하는것을 디자인하다. 금속으로 어떠한 형태를 만들어 내는것을 디자인하다.
이러면 말이 되는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조형이라는것은 파인아트에 가깝다. 디자인은 파인아트와는 조금은 다른 영역을 가지고 있다.
'조형을 하다' 와 '디자인을 하다'는 같이 쓰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뭐 우리과는 파인아트도 하고 디자인도 하는 멀티과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럼 정체성이 문제다.
조형을 하는 디자인과...이런건 세상에 없다.
아무도 이해를 못한다.
심지어 졸업한 나도 그렇고 학교를 다니는 후배들도 모른다.
객관적으로 우리과 수업 커리큘럼은 공예로 가득차있다.
은땜을 배우고 톱질과 줄질을 배우고 망치질을 배운다.
학생들은 손으로 그것을 만들어내는데 정신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디자인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우리과애들은 생각할 틈이 없다.
아이디어스케치를 할때부터 이미 손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떠올린다.
그래서 본인이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스케치를 한다.
자유롭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에서 아이디어를 뽑아내 무형의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와는 조금 다르다.
디자이너는 무엇을 만들것인가 고민하고 생각하며 그것을 그려내면
만드는것은 모델러와 엔지니어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것은 디자이너의 손을 안거쳐도 디자이너의 작품이 되는것이다.
근데 우리과는 무엇을 직접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과의 정체성에 직접 만드는것을 제외해버리면 대부분의 것을 잃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과에서 중요한것이 직접 만드는것이다. 대부분의 수업이 그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데 디자인과다.
그것이 아이러니한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못 내놓고 있고 의견만 분분하다.
때문에 학생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취업이냐 순수작가냐 이것도 문제이다.
디자인이라면 취업. 조형이라면 순수작가.
이분법적인 사고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지만 순수작가를 양성할 것인지 취업전선에 뛰어들 학생들을 키워낼것인지 학과는 분명히 해야한다.
그에 맞춰 커리큘럼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학생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디자인과이기 때문에 취업을 장려하면서 커리큘럼은 순수작가를 위한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목 명칭들은 모두 디자인이다.
과연 학생들은 졸업하면 취업을 해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작가가 되야하는것인가.
지금 우리과 애들을 보면 눈이 참 흐리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찾아 보기 힘들다.
무엇을 해야할지 방황하고 있다는 증거다.
학교는 이런 얘기를 한다. 공예적인 감성을 가지고 디자인을 하면 충분한 메리트 있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디자인도 잘하고 공예도 잘했을때 얘기다.
지금의 현실은 공예도 아니고 디자인도 아니다 가 정답이다.
그래서 꿈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열심히 땜을 해서 뭐하지..망치질해서 뭐하지..회의감에 쉽게 빠져들며
취업을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게 더 급하다고 말한다.
지금 학생들에게는 꿈을 갖게 만드는게 필요하다. 뚜렷한 길이 보여줘야한다.
꿈을 꾸게 만들 수 있는 교육 그것이 가장 절실하다.
그것을 위해 우리과가 첫번째로 해결해야하는것이 바로 정체성문제라고 생각한다.
술먹고 들어와서 이런 길고 내용이 뒤죽박죽인 글을 썼다.
쓰고보니 왜썼는지 모르겠는데
어째든 썼다. 내가 하고픈 얘기들을 두서없이...막썼다.
2011.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