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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3 01:17

작가노트 20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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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내며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공부와 시험이라는 틀과 압박 속에서 그저 평범하게 살았다. 공부라는 것은 머릿속에 무언가를 마구 우겨 넣고 시험볼 때 우연히 그것이 떠오르기를 바라는 재미없는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그런 무료한 학창시절 가운데 소소한 재미가 하나 있었다. 수학문제! 수학 시간은 다른 수업과 마찬가지로 재미없었지만 수학 시험 문제를 푸는 것은 재밌는 시간이었다. 다른 과목 시험들은 무언가를 외우지 못하면 정답을 알 수 없었지만, 수학은 문제에 답이 있다. 무언가를 외우지 않아도 문제를 말그대로 풀어나가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시간가는 줄 모르게 빠져드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풀리지 않을 때는 몇날며칠 골머리를 써야했지만 그런 문제일수록 답을 찾았을 때 기쁨은 더 했다.

대학에 와서 금속조형디자인을 전공하며 학창시절처럼 무언가를 외우고 공부하는 그런 것이 없는 대학생활이 맘에 들었다. 하지만 창작 활동이라는 것 역시도 쉽지만은 않았다. 사람들로 하여금 울림이 있는 어떤 형태를 찾아가는 것, 남들과 다른 독특한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한껏 담아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 어찌보면 감정에 무미건조한 나에게는 조금 어려운 일들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졸업을 앞둔 4학년쯤 나의 소소한 특기를 하나 발견했다. 움직이는 장치나 복잡한 형태의 구조를 분석하고 파악하거나 그것을 설계하는 능력. 그것은 우연히 손에 들린 필름카메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건 셔터가 어떻게 작동하는걸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내 손위에 고등학교때의 수학문제 같은 내가 풀어야하는 재밌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대학 졸업 후 금속으로 카메라를 만드는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카메라들은 나에게 풀어야하는 재밌는 문제가 되었고 그것을 풀다보면 카메라 작품이 완성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어려운 문제를 생각해냈다. ‘시간을 세팅하고 셔터를 누르면 지정된 시간이 지나고 셔터가 자동으로 닫히는 카메라’ 라는 문제였다.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우선 시간이라는 요소가 들어가기 때문에 시계를 먼저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국내에서 기계식 시계에 대한 정보를 얻을 길이 막막했다. 그런 것을 가르쳐주는 곳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유튜브에 나오는 시계제작자들의 영상을 수십번 수백번 돌려봤다. 그들의 어깨 너머 작업 책상위에 있는 낯선 도구들을 눈에 담아두고 구글과 이베이에서 ‘watchmaker tool’로 검색해서 나오는 수많은 이미지들 중 내 눈에 익은 어떠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100년 전 만들어진 오래된 골동품 같은 도구들을 하나씩 사서 그것들을 찬찬히 분석해봤다. 이걸로 어떤 형태들을 만드는데 썼을까? 이 도구는 시계제작자한테 왜 필요했을까? 이렇게 또 다른 문제가 만들어지고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풀어갔다. 나에게 도구는 수학에서 공식과 같았다. 공식을 증명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이 공식을 어디에 써야할지 알수있었고 그런 공식들이 모여 나는 시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을 세팅하고 셔터를 누르면 지정된 시간이 지나고 셔터가 자동으로 닫히는 카메라’ 라는 문제를 생각하고 2년이 지나서 나는 그 문제의 답을 찾았다.

시계에는 톱니바퀴가 많이 들어간다. 시계는 톱니바퀴들의 연속이라 봐도 무방하다. 톱니바퀴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작도하는 것도 하나의 작은 문제지만, 톱니바퀴와 톱니바퀴의 연결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재밌는 문제가 된다. ‘하나의 톱니이빨이 맞은편 이빨을 밀어낼 때 다음 이빨이 맞은편 다음 이빨과 만날 수 있는 적절한 거리는 얼마인가?’ 이번 작업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자 공식이 될 것이다. 두 톱니바퀴 사이의 거리를 구하는 공식. 앞으로 내가 작업을 하는데 필요한 나만의 도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도구를 이용하여 다음 문제를 풀어갈 것이다. 끊임없이 문제를 내고 그것을 푸는 것, 그것이 내 작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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