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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4 22:15

오!마이 오브제 도록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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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오브젝.pdf

 

오 마이 오브제(Oh My Object) !


“나는 그곳에 자주 간다. 다른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물건들을 찾아서. 그곳에서
구식 물건, 깨진 물건, 쓸모없는 물건, 도대체 무슨 용도로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 괴상한 물건 ... 노랗게 빛바랜 19세기 사진, 쓸모 없는 책,
무쇠 숟가락을 발견했다.” -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의 『나자(Nadja) 』중에서1


초현실주의 선언을 했던 앙드레 브르통이 1928년 생투앙 벼룩시장(Saint-Quen
market)에서 무쇠 숟가락, 일명 ‘슬리퍼-스푼(slipper-spoon)’을 발견한 것은 매우
흥미진진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슬리퍼-스푼은 한 농부가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초현실주의자들에게 구식 물건, 일종의 상징적 오브제로 재발견되었다.
구식 물건이라는 개념은 “장인의 손길이 담긴 유물, 부르주아 문화에서 발견되는 옛
이미지, 유행 지난 패션이라는 상이한 범주들을 끌어들이면서, 자본주의에 잔류한
과거 문화의 파편과 자본주의 시대의 사회경제적 자신감을 대립시키는 역할을
했다.” 할 포스터(Hal Foster)는 그의 책 『강박적 아름다움(Compulsive Beauty)』
(1995) 6장에서 구식 물건을 이렇게 독해했다. 그에 의하면, 초현실주의자들은
묻혀 있던 물건을 찾아 세상에 내놓는 행위를 통해 상품교환 경제가 침몰시킨
자본주의 이전 시대 생산 관계를 환기시켰다. 벼룩시장과 구식 물건은 직접
생산, 단순 형태의 물물교환, 생산자의 직접 소비 같은 과거가 되살아나는
언캐니(uncanny)한 경험을 통해 특정한 사회적 산물을 심리 그리고 역사와 연관시켜
사회비판으로까지 이어지게 했다. 즉 자본주의적 사물의 질서를 교란하려는
초현실주의 예술 전략이 물건들을 통해 생기했던 것으로, 그들로 인해 발견된
사물은 수집, 또는 다양한 방식의 표현으로 이어졌으며, 가장 개별적인 사물이 가장
사회적일 수 있는 해석적 대상임을 주지케 한다. 물건, 나아가 발견된 오브제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람과 또다른 사물과의 관계에 생명을 부여하는 파장력있는
에너지가 아닐 수 없다.


어언 백년전의 일이었던 초현실주의 구식 물건의 재발견을 상기하게 된 것은 최근
‘오브제(objet)’를 화두로 하는 일련의 작가들 덕분이다. 고보형, 김계옥, 서정화,
신혜정, 엄유진, 이재익, 정호연, 최윤정, 현광훈 9명의 작가가 자신들이 만들어온
특별한 오브제에의 성찰을 시작한 것이다. 각자 작업의 방향이나 제작 여정이
같지는 않지만 사유의 공통분모가 바로 오브제에 있음은 이들이 함께 하는 계기가
되었다. 금속의 물질성에 기반한 제작 태도를 통해 작업의 형식을 만들어온 그들은
‘왜 오브제인가?’ ‘오브제가 철학적 여정일 뿐 아니라 제도적, 사회적 환경의
산물은 아닌가?’ 등의 질문을 통해 작업에 대한 존재론적 해명을 시작한다. 자신의
작업을 오브제라 할 때는 단지 습관적 지칭이 아닌 논리적 개연이 있을게다. 동시대
융합예술의 탈경계적, 탈장르적 행보는 미술, 공예,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결합적 표현이 가능해진 가운데, 분야에 관계 없이 널리 사용되는 작품의 지시어 중
하나로 오브제가 꼽힌다. 특히 조각적 형태나 입체적 양감을 가진 작업일 경우 더욱
광범위하게 통용된다. 9명의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언급 전에, 작가의 이름 대신
특정 오브제로 인상지어지거나 자신의 심리를 대변하고 상징화하는 존재의

대리물로서 자리하는 오브제에 대한 정의와 기원을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오브제(objet)’라는 말은 물건, 객체 등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에서 기인하였다.
이 프랑스 단어는 남성형으로 물체나 사물, 용품, 감정이나 행위의 대상을 지칭하는
명사이며, 특별히 공들여 만들어지거나(crafted) 제작된(manufactured) 물건이라는
뜻이다. 오브제의 사전적 정의는 보편적인 사물의 지시어이지만, 미술과 연관해보면
‘일상적 합리적 의식을 파괴하는 물체 본연의 존재 방식’을 가리킨다고 알려져
있다. 오브제는 특히 초현실주의가 ‘전용(轉用)’, 독특한 표현 개념을 부여하여
구체적인 예술의 한 방법으로 삼으면서 예술 용어로서의 인식이 시작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의 용도나 기능의 의미를 잃게 되면서 예기치 못한 체험이나 연상 또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오브제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 혹은 잠재된 욕망과 무의식의
시적 대상이 되기도 한다.2

또한 사물 자체로서의 사물성을 환기시키며, 사물로서의
존재가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 전치(轉致) 또는 변형될 수 있는 무기적(無機的)
생명임을 사유케 한다.


오브제는 회화도 조각도 아닌 조형 개념을 탄생시키며, 예술가의 삶과 관계적
사물로서 자리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오브제 아트(object art)’라는 영역이
등장하는데, 앗상블라주(assemblage)나 미니멀아트(minimal art)의 대응물로
간주되었다. 알랭 주프레이(Alain Jouffrey)는 오브제 아트를 ‘일상적인 물체를
결합하거나 그런 물체의 모양을 띠게 만드는 작업’으로 지칭하며 앗상블라주와
연계시켰고, 도날드 저드(Donald Judd)는 ‘특수한 물체(Specific Objects)’라는
말로 제안하면서 미니멀리즘의 본질이 질료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은 ‘포스트 오브제 아트’ ‘반(反)오브제아트’, ‘오브제 아트의
탈물질성’으로 나타나 철학적으로 주체와 객체, 관념론과 유물론, 형이상학적인
것과 형이하학적인 것 등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그만큼 오브제로 시작된 미술의
용어는 ‘이슈’적이었고, 여전히 많은 사유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특히 1970년 열렸던 《오브제 유에스에이 Objects U.S.A.》전은 미국을
순회했던 전시로 오브제에 대한 흥미로운 사건과 관점을 제시하였다. 이 전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대량생산된 사물의 익명성에 대한
반대급부로 공예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하였다. 즉 물건의 익명성은
인간의 개성이 부가된 독특한 대상에 대한 욕구를 부추겼고, 개별적 표현 기술과
미학적 기준을 가진 사물의 생성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이 전시에 참여한 250여명의
예술가-공예가들의 300여점 이상의 작품 중 일부는 꽃병과 같이 기능적인 사례를
보여주었지만, 또 다른 작품들은 미적 만족을 의도한 것들이었다. 이들은 공통된
재료나 기법으로 양식적 교집합을 갖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개성적인 창조물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새로운 공예 운동의 양상으로 곧 미국 전역에 퍼졌다.3 이는
공예가 미적 대상으로서 오브제라는 하나의 관점을 명확히 한 전거가 아닐 수 없다.
이 전시가 한국에 알려지고 이에 반응하는 작가가 있었는지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후 세대에게 공예가 오브제로서 인식하게 되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전시가 한국의 현대공예, 나아가 예술공예로서 미적 대상,
오브제를 사회적으로 인식시키고 내재화하는 토대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다른 한편으로 현대공예에서 오브제는 일종의 자기 정체성과 연관된 단어임을
상기해야 한다. 오브제는 미술과 공예 그리고 디자인이 같거나 다른 특성들을 조금씩
노출하면서 자기표현의 정체성에 무게를 두며 개성어린, 독자적 표현을 지칭하게
이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오브제는 미술과 공예 그리고 디자인의 탈경계 지점에
위치하면서 기능적이거나 심미적이거나 하는 이분법적 분류를 떠나 독자적 표현의
산물로서의 성격을 규정하는 용어라 해야 한다. 2007년 하워드 리사티(Howard

Risatti)가 물질적 사물이라는 본성에 비추어 볼 때, “공예는 재현(re-
presentation)이 아니라 표현(presentation)이며, 이미지가 아니라 사물임”을 강조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다. 순수미술이 사물이 아닌 기호에 기반을 둔 것과 달리
공예는 기호가 아니라 사물에 기반하고 있음으로 하여 ‘사물성(objectivity)’을
통해 공예의 본질적인 성격이 드러난다고 한 것이다.4 2011년 필자는 한 글에서
동시대 공예는 여전히 하나의 유기체(Organ)처럼 진화하는 중임을 역설한 바
있는데, 전통적인(Old), 귀중한(Royal), 천재적인(Genious), 예술적인(Artistic),
자연적인(Natural) 속성들이 자유롭게 융합하며 자신 만의 오브제를 만들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다시 그로부터 약 십년을 지나오며 현대공예는 닫혀있는 경계들을
와해하고, 보다 자유로운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하면서 지금과 여기의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오브제를 제안하고 있다. 9명의 작가가 네러티브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거나
지극히 기능적인 것의 오브제라 할지라도 말이다.


9명 작가의 오브제에 대한 고민은 내재화되고 익숙해진 자신의 조형언어에 대한
사회적 통용과 존재론적 의미에 관한 것이다. 먼저 초현실주의 슬리퍼-스푼을
연상케한 특별한 오브제, 고보형의 작업을 살펴보자. 그는 주전자, 스푼 등 식기를
주로 만들어왔는데, 재료를 두드려 모양을 만드는 단조 기법을 제작의 기초로 하고
있다. 그의 모든 제작에는 사물의 쓰임을 상상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고, 경험적,
실제적 사용에서 오는 기능적 사유가 녹아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오브제는
크기의 반전을 보여줄 것이다. 쓰임을 기호화하고 사용의 경험을 상징화하면서 그의
오랜 오브제, 스푼에 대한 오마주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스푼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용하기엔 크게 확대된 형상을 통해 자신만의 존재론적 사물의 서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단조의 견고함을 완벽하게 녹이는 듯 해체하는 형상을 드러내는
김계옥의 작품은 자연물과도 같은 오브제 설치로 드러난다. 적동선으로 직조된
그물망 형상의 작업은 인간의 피부를 이루는 미세한 조직을 표상한 것이라 한다.
그의 작업은 실제의 피부보다는 관념화된 물질의 보호막으로서의 두께의 표현이라
해야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금속 물성의 유연성과 인간 피부의 얇지만 강한
생명성을 결합시킨 그의 작업은 일체의 시간과 경험을 견딘 피부의 경험, 기억의
층을 불과 마찰을 견딘 금속선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오브제는 존재하거나
부재하거나, 피부나 신경이나 모두 강한 압축과 초월의 시공을 관통하고 있음을
고백하듯 공간의 여백을 점유한다.


금속의 물성과 형식을 기하학적 형상으로 실험하는 서정화의 오브제는 깊은 관계적
사유가 결과한 것이다. 쓰임과 질료를 합목적적으로 결합하거나 용도와 상관없이
물성과 형태를 실험하거나 그의 작업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의 미학을 지닌다.
그 안에는 촉각과 시각의 복합적인 교호작용과 구조의 정합성있는 결집이라는
과정이 내재한다. 인간과 삶의 관계적 사물과 도구를 통해 원천적 제작 원리를
발견하는 그의 작업은 특별한 범주나 형식을 제한하지 않으며 꾸준히 관계적 사물을
만들어왔다. 그가 만들어온 사물은 헤겔(Hegel)말하는 ‘이것’과 통한다. 즉,
“사물은 일반적으로 그것이 지닌 성질과의 관계 혹은 그것을 형성하는 물질과의
관계에 입각하여 단일한 ‘이것’으로 지시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사물의
원형이 되는 형태를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의도는 제작에 대한 자신의 실제적이고
인식론적인 탐구라 하겠다.


신혜정의 오브제는 자연으로부터 기인한다. 고전적이라 할만큼 자연의 모티프는
친숙하고 부드러운 대상으로, 그의 작업에서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의 속성과
이질적인 만남을 이룬다. 그간 자연의 섬세한 움직임을 담은 금속 조형물을 다듬어온
작가는 담백하지만 예리한 시선으로 임해 왔다. 그에게 자연물은 생명의 순환과
창조의 원리를 담고 있는 살아있는 오브제로 순간순간 포착된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때론 바람에 흩날리듯 가늘게 떨리는, 때론 부드럽게 뭉쳐있는 자연물의 모든 호흡을
금속의 표정으로 만들어낸다. 그래서 작가의 오브제는 자연의 재현이 아닌 그의
시선이 머문 미세한 찰나의 표정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차갑다는 금속의 감각은 엄유진의 기하학적 투각 작업, ‘만화경’에서 잘 드러난다.
다분히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압축하는 것과 같은 작가의 오브제는 유년시절
편안하고 안전했던 정서적 기억이 투영된 공간을 마치 건축하듯 형상화한다.
6각형에서 시작하여 피라미드를 만들기 시작했던 그는 안정감 있는 규격화된 공간을
추구한 것인지도 모른다. 편집증 또는 강박증을 지닌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작가의
수학적 공간은 은닉의 안락함을 유지시킨 특별한 구축물로, 유년기 홀로 있던 순간의
어루만짐이자 치유의 과정이 담긴 것이다. 일반적으로 만화경이 폐쇄공간의 착시
혹은 환각적 공간이라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공간은 투각으로 노출 혹은 발견이
가능한 개방체이다. 투각을 위한 반복적 제작 행위와 기하학적 형상은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경계를 넘나들며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의 판화 속
공간들처럼 꾸준히 깊고 넓게 파고들고 있다.

 

기하학적 태도로부터 유기적 형상으로 이어지는 작업은 이재익의 오브제에서
잘 드러난다. 물질의 기본적인 단위나 생물의 세포로부터 기인하는 반복적이고
균질적인 형상을 금속으로 조형해온 그의 작업은 세밀한 구조의 견고함을 특징으로
한다. 금속이라는 질료적 특성을 고려한다면서 잘게 분절해있는 패턴으로 보이는
그의 작업은 제작 과정과 시간의 좌표 설정이 매우 중요해보인다. 기하학적
태도로부터 유기적 형상이 결합해 있는 작업은 비교적 최근에 시도한 것이다.
그간에 보여주지 않은 유기적 기(器) 형상은 실험적인 오브제로 차갑고 반듯한
직선으로부터 부드럽고 유연한 곡선으로 이어진 형태와, 유약을 입혀 구운 과정을
특징으로 한다. 무엇보다 그의 오브제는 자유로운 질료와 형상의 제작으로 나아가는
표현의 무한 기둥과도 같다.


견고한 단조나 기하학적 선의 오브제와는 다르게 유연한 식물 모티브 혹은 이들의
집적 작업을 보여주는 이는 정호연이다. 금속이라는 차갑고 견고하고 날카로운
직관적 예측을 보기좋게 무너뜨리는 그의 작업은 부드럽고 상호 조화를 이루는 자연
대상을 상기시킨다. 오래된 고목위에 소복하고 탐스럽게 피어나는 버섯기둥과도
같아 보이는 이번 전시에서의 오브제는 그동안 장식을 위한 기물과는 거리를 두며
자신만의 기념비적 형상을 세운 것이다. 이전의 브로치로 제작된 기물은 반복적
패턴과 상호 연계된 형상성을 기반으로 유기적 형태를 띠곤 하는데, 이번 전시의
오브제는 그로부터 기인한 생명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금속의 질료가 타소재와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최윤정의
오브제는 숨의 느낌을 형상화한 것이다. 불투명한 플라스틱과 이를 둘러산 은의
절제된 만남의 브로치이다. 둥글게 피어오르는 숨을 형상화하기 위한 여러 제작
실험을 거쳐 특수플라스틱의 조형성으로부터 표현 가능성을 확인한 작가는 그 간의
금속질료의 기법적 특성을 진화시키는 중이다. 숨이 피어나는 생명성을 불투명 흰색
특수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완성하는데, 호흡의 팽창과 수축의 순간 또는 세포 증식의
단면처럼 작가의 작업은 둥글게 부풀어오르고 잠시 멎는 순간을 절제된 기호로
완성하고 있다. 즉 그의 오브제는 영원과 찰나, 생명과 소멸, 존재와 부재 등의 삶의
시간과 기억의 시그니처인 것이다.


금속의 절제된 기계 미학은 현광훈의 오브제가 지닌 특성이다. 눈과 손의 촉감이
교차하는 그의 금속 사진기나 시계는 물절적이면서 기능적인 또한 심미적 오브제로
자리해왔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아진 금속 오브제들은 복잡한 과정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프랙탈 구조의 정교한 기계버전과도 같다. 기능만을 염두에 둔
것들이라면 의미가 상쇄되겠지만, 그의 사물은 질서와 구조에 의해 움직이는 대칭적,
비대칭적 결합의 정교한 조화의 오브제로서 존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처럼
그가 만들어왔던 모든 오브제들에 대한 본연의 원리로서 구체화된 두 톱니바퀴의
거리측정 도구가 선보인다. 이처럼 기계를 애호하는, 또는 그것의 원리적 이해를
도구를 통해 주목하는데, 이는 작가의 오브제의 오리지날러티를 향한 제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9명의 작가가 보여주는 오브제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익숙한 기능의 사물일지라도 독자적이며 특별하다.
질료가 지닌 특성을 다루는 방식이나, 그것을 통해 구현하는 심상이나

정서도 모두 다르게 독특한 오브제들이다. 이를 제작하는 9명은 동시대 세계관의
영향권에 있으면서도, 오랜 역사 속 누군가처럼 원초적 물질성과 그것의 다룸의
기술을 진화하며 오직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 공통적이고
항구적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오브제가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12가지 유형으로
논의될 수 있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런 분류 너머, 상징적이거나
심리적이거나, 아름답거나 의미있거나, 쓸모있거나 욕망하거나 하는 그들의
오브제는 모두 자신의 삶과 예술에의 지향점을 함축하고 있다. 각자의 개성과
철학으로 자신을 닮은, 그간의 경험과 기억을 담은, 끊임없이 제작과 실천을
갈아넣는, 누구도 대신하지 않는, 자신만의 오브제에 대한 성찰을 이어가는 중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오브제는 생성되고 역사한다는 존재론적 외침이
들리는듯 하다, ‘오 마이 오브제여!’ 라고.


2020.6. 박남희(미술비평, 예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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